법기마을 소개

몸과 마음의 힐링 공간-법기수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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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소개

마을 이미지

법기마을은 1860년(철종 11) 이전에는 본의곡이라 불려졌으며, 이는 ‘의(義)를 본으로 하는 곳이다’ 라는 뜻으로 관련 문헌은 없으나 어느 때인지 의와 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산간에 모여 살게 되면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1863년(철종 14) 이전까지는 본의곡이었으나 1872년(고종 9)에 본의리로 되었으며 그 후 본법으로 바뀌었습니다. 법기리는 1897년(고종 34)부터 본법창기마을이 합쳐져서 지금의 법기리로 불려왔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본법창기로 분리되었습니다. 본법마을의 최초 형성 시기는 법기리 본법 고분군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데, 출토된 토기 등이 5세기 경으로 추정되어 이 때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본격적인 형성 시기는 임진왜란 때 단양우씨가 기장에서 난을 피해 이 곳 본의곡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면서 부터였습니다.

  • [자연환경]

마을 내에는 빼어난 산수 관광 명소로 법기수원지, 용대, 타래소 및 각종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들이 있어 마을 전체가 하나의 관광 명소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향토문화대전

    법기마을의 명소

법기수원지

법기수원지는 일제 강점기인 1927년 착공돼 1932년 완공되었스며, 저수량은 150만여t으로 부산시 금정구 두구동, 청룡동,남산동 일원 약 7000여 가구에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80년간 상수원 보호를 위해 일반인 접근을 허락하지 않다가 지난 2011년 7월 15일 수원지 전체 680만㎡ 중 2만㎡ 정도의 일부 부지만 개방되었습니다. 입구에서 댐으로 오르는 수림지에는 수령이 130년 가까이 된 히말라야시더, 편백나무, 벚나무가 빼곡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식수원보호차원에서 음식물 반입, 애완견출입, 나물류 채취를 금하고 있으며, 하절기(4~10월)엔 오전 8시~오후 6시, 동절기(11월~3월)엔 오전 8시~오후 5시 개방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농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습니다^^

사적 제100호-양산 법기리 도요지

법기리 요지는 오래 전부터 인근 창기마을의 이름을 딴 ‘창기사발’의 생산지로 구전되어온 곳으로, 조선 중기 16~17세기경의 지방백자를 번조한 요지입니다. 요지는 이곳에서 ‘대매지리산’ 또는 ‘대매재’라고 불리는 법기리 마을 뒷산의 남쪽 사면에 있는 법기수원지 아래에서부터 본법부락 주위까지에 위치합니다. 법기리 787번지 최말련 씨 집(이 집은 바로 가마터 위에 있습니다)과 그 부근의 인가에서부터 782번지의 경작지 일대(현재 안내판이 세워진 곳) 및 그 산 위쪽까지 수기의 가마가 산재해 있는데, 현재 지정된 지역은 인가와 묘들이 들어서거나 경작지로 변해 퇴적층이 많이 훼손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지정지역 바로 옆의 대나무밭(796번지)에는 비교적 양호한 퇴적층이 확인되고 있으며, 이곳에서 출토된 자편을 보면 마을 부근의 요지는 대체로 17세기 것이고, 산쪽의 요지는 16세기경의 것으로 산 위쪽에서 시작하여 점차 아래로 내려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산 위쪽 요지에서 출토되는 백자편들은 만듦새가 거칠고 투박하며, 대접과 접시 종류가 대부분입니다. 굽은 죽절굽이 많고, 모래나 내화토눈을 받쳐 구웠습니다. 이중에 간혹 거친 태토에 저화도번조로 표면이 마치 녹청자와 같은 것이 섞여 있어 주목을 끕니다. 산 아래쪽 요지에서 출토되는 백자들 역시 거칠고 투박하게 만들었으며, 기종은 대부분 대접·완·접시류들이며, 그릇의 안바닥에 원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고, 굽은 오목굽에 가까운 것과 죽절굽이 퇴화된 형식의 것이 존재하며, 간혹 높은 굽의 측면을 삼각형으로 오려낸 제기의 굽 형태도 보입니다. 받침은 내화토를 빚어 4~5곳에 받쳐 구운 것과, 굵은 모래덩어리를 4~5곳에 받쳐 구운 것 등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번조된 백자는 모두 지방 수요의 중·하품 백자로, 유색은 회백색이나 짙은 회색, 연두색 또는 갈색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기리 요지에서 번조된 백자류 중에는 굽의 형태나 백자질 등이 일반적인 백자와는 다른 부류가 있는데, 이들은 바로 일본의 주문을 받아 수출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다기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본 수출용 다기를 전문적으로 생산했던 부산요가 사라진 지금 법기리 요지는 한일도자교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출처 : 답사여행의길잡이 14-경남

법기마을 정자

법기리에서는 당산나무를 당산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일반적으로 농촌 마을에서 쓰는 명칭인 당산신, 당산제 대신 당상신, 당상제라 칭하는 것인데, 당산의 와전인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당산제는 마을 주민들이 각 세대주별로 배당한 금액을 모아 거행하고 있는데,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하여 당산제를 거행하는 전통은 당산제를 통해 마을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산나무는 기목입니다.

  • [절차]

당산제에 진설하는 제물의 종류와 제의 절차 및 제의 양식은 일반 가정에서 행하는 기제사와 동일합니다. 제의가 끝나면 제주가 먼저 음복한 다음 마을 주민들이 함께 후렴합니다. 이때 집안에 길흉사가 있거나 길흉사에 참석한 이는 부정을 탄다고 하여 음복하지 않습니다. 평상시는 마을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어요^^

 

출처 : 향토문화대전